‘의료급여법 개정안, 어떻게 볼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도 시장논리로? / 전양호

[한겨레 왜냐면]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도 시장논리로? / 전양호

의료급여법 개정안, 어떻게 볼것인가

얼마 전 한 할머니 환자가 예약 날짜를 한참 넘겨 병원에 오셨다. 나는 의사랍시고, 치료를 안 하시면 큰일 난다고 제 날짜에 오시라고 ‘야단’을 쳤다. 그런데 그 할머님의 대답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길거리에서 종이를 주워 생활비를 충당하시는 이 할머니의 말씀은 요즘 비가 많이 와서 종이를 모으지 못해 병원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분의 진료비는 1회 진찰료 1000원에 약국비 500원, 합해서 1500원이었다.

지난 연말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 대한 본인부담제를 신설하고 지정 병의원제 도입을 하여 재정절감을 하겠다는 의료급여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들은 본인부담이 없어 병의원을 무분별하게 이용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비용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하여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그 대신 1종 수급권자들에게 건강생활 유지비 명목으로 월 6천원을 지급하여 이 돈으로 본인부담을 충당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돈을 미리 지급하면 비용의식도 생기고 본인부담도 없앤다는, 나름대로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처방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지부의 처방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실상에 대한 파악이다.

복지부의 처방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에 대한 파악이 빠져 있다

우리 사회의 빈자들 약 700만명 중 180만명만 의료급여 대상자로서 본인부담 면제 또는 할인 혜택을 받고 있다. 또한 법적으로는 본인부담을 완전히 면제받는 것으로 되어 있는 1종 수급권자들도 사실 낼 돈은 다 내야 한다. 대학병원에 입원하면 치료비의 34%를 내야 하고 공립병원의 외래치료비도 15%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치료비 항목은 의료급여 환자들도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들이 돈을 내지 않아 병원을 무분별하게 이용한다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는 건강보험 대상자가 12%인 반면, 의료급여 1종 환자는 20%, 2종 환자는 29.2%다.

또 이들에게 미리 돈을 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것도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생활 상황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다. 기초생활 보장자에게 다달이 주어지는 20만∼30만원이란 돈은 기초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란다. 미리 6천원을 주면 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 전에 방값에, 식비에 이 6천원을 먼저 써야 할 형편이다. 아마 정부의 이번 의료급여 개악안은 재정 절감에 도움이 될 것이다. 6천원을 미리 주고 아파도 이 돈을 아끼면 당신 돈이 된다는 정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빈자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종이를 주워야만 병원에 올 수 있는 할머니처럼 우리 사회의 가난한 환자들은 나날의 생활이 전쟁이다.

더욱 걱정인 것은 이런 정책이 의료를 바라보는 정부의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는 국민이 돈이 있건 없건 치료권을 보장한다는 헌법정신을 벗어나 의료서비스를 산업화·시장화하기 위한 많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는 의료법인에 대한 수익사업,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들의 병원경영 지원회사에 대한 출자, 민간보험사와 의료기관 간의 연계 등을 허용하도록 하는 ‘서비스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내놓고 올해 상반기에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는 건강보험을 붕괴시키고 의료의 상업화를 가속화하여 의료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돈이 없는 사람들도 본인부담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러한 의료산업화 정책의 근거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의료급여 환자들에 대한 본인부담금 부과 정책이 바로 이런 논리에서 출발했고 결국 의료산업화 정책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시민 장관은 ‘의료급여제도 국민보고서’에서 의료수급권자는 “자기 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비용의식이 없”고 “다른 국민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이런 정도는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을 갈 때 돈을 내야만 한다는 제도를 강행하려 한다. 자신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복지부 장관으로서 빈곤층을 비롯한 모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장에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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